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문화원

반응형

성주문화원


- 홈페이지
sjmhcho.conocean.co.k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로 3204

성주문화원은 1968년 설립되어 지역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과 문화예술의 저변확대를 통하여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각종 향토 사료집의 발간과 전통 예술축제 및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잊혀 가는 조상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현대 문화와 조화되게 함으로 지역문화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4-933-0700

- 쉬는날
주말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09:00~18:00
※ 강좌시간에 따라 변동 가능

- 주차시설
가능





◎ 체험프로그램
사물놀이, 민요, 요가, 서예, 생활영어 등





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12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10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9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8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7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6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5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3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2경상북도_성주군_성주문화원_004





◎ 주위 관광 정보

⊙ 쌍충사적비


- 홈페이지
https://www.sj.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763-1

성주읍 서문고개 성주여고 입구 맞은편에 있는 쌍충사적비는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성주성(星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제말(諸沫) 장군과 진주성(晋州城) 싸움을 돕기 위해 출전하다가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업적을 새겨 정조 16년(1792)에 세운 비이다.
제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제말의 조카인 제홍록은 숙부와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했다.
비는 전체 높이가 325㎝이며 높이가 216㎝·너비 79㎝·두께 37㎝ 규모의 비신을 받침돌 위에 올리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이수에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서유린(徐有隣)이 글을 짓고 이병모(李秉模)가 글씨를 썼으며, 성주목사를 지냈던 조윤형(趙允亨)이 전서했다.
쌍충사적비는 처음에는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40년 경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 성주 성산관


- 홈페이지
https://www.khs.go.k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심산로 95-6

이 건물은 조선시대 성주목 관아(官衙) 건물의 하나이다. 처음 건립된 성주목의 관아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선조 41년(1608)에 목사 송영구(宋英耈)가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동북쪽에 사시헌(四時軒, 목사의 관사)과 함께 건립하였다. 효종 8년(1657)에 목사 최계훈(崔繼勳)이 지금의 군청자리로 이건 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개수(改修)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관아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의 건물만이 남았으며, 1994년 현 군청사 신축공사로 인해 군청사 뒤편 현재의 자리로 이건 하였다.
대청에는 성산관(星山館)을 현판 하고, 대청 안쪽으로 절제아문(節制衙門), 사시헌(四時軒)을 현판 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 건물로 오른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 건물의 정면은 주춧돌을 높게 하여 기둥모양으로 나열시켰고 마루바닥이 지면에서 높이 올라와 있는 것이 특색이다. 흔히 고상식(高床式)이라고 불리는 이런 구조는 마루를 주로 이용하는 남방건축에서 지면의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짓는 방법으로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에도 같은 구조가 남아 있어 서로 비교가 된다.

⊙ 별고을시네마


- 홈페이지
http://seongju.scinema.k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길 17

별고을시네마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위치한 작은 영화관으로, 성주창의문화센터 내에 자리하고 있다. 1관과 2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신 영화를 상영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 상세 보기 : 바로가기

⊙ 연계당 및 연계소영건일록


- 홈페이지
https://www.sj.go.k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12-6

이 건물은 조선시대 소과에 급제한 생원 및 진사들이 모여 선현(先賢)을 숭모(崇慕)하고 서로 면학을 격려하는 장소인 사마소(司馬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조 21년(1588)에 성주성(星州城) 서문 밖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그 후 건물이 많이 낡아 후손들이 계를 조직하여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우고 이름을 연계당이라 하였다.
건물은 경사대지 전면에 봉하문(鳳下門)을 내고, 연계당, 관리사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고, 중앙마루 2칸을 중심으로 양측칸에 온돌방 1칸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 뒷벽에는 수장공간인 벽장(壁欌)이 있고, 온돌방 앞면과 마루 뒷면에는 각기 쪽마루를 두어 사용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쌓았고 자연석 초석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1992년에 신축한 관리사는 정면 6칸·측면 1칸의 맞배집이고, 대문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연계당에 보관되어 있는 「연계소영일기」는 1860년 이건 공사를 날짜별로 기록하고, 특히 건축 자재의 매입 및 가격, 목수, 토공(土工) 등의 수와 급료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건축공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책자는 가로 22㎝, 세로 34㎝이며 1쪽에 9줄씩 모두 30쪽 분량으로 필사본(筆寫本)이며 표지는 「연계소영건일록(蓮桂所營建日錄)」이라 적혀 있다.

⊙ 임정사(경북)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24-35

한국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가 사찰이지만,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소재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인 임정사는 여느 산중사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저 복잡한 세간의 세월과 인심 속에 각종 스트레스로 힘겨워 하는 도시 사람들의 마음 수양을 위한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한다. 주변은 천주교 성당이 자리하고 일반 주택가가 밀집한 곳으로 골목길을 따라 찾아 들어간 임정사의 풍광은 입구부터 일반 여염집 대문 모습을 하고 있어 입구에 ‘임정사’라고 쓰인 편액이 아니었다면 어느 문중 집으로 착각하였을 것이다. 기와를 얹고 황토를 바른 담장이 정겨움을 준다. 임정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시대이다. 고종 27년인 1890년에 우산당 상진(牛山堂 相珍)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임정사라는 이름은 1936년 무렵에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을 정도로 절의 역사는 깊지 않다. 아마도 처음부터 도시 속의 포교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임정사의 주요 건물로는 극락전이 주불전을 이루고 있으며, 삼성각과 종각이 있다.

임정사의 창건은 조선 고종 27년(1890) 감응사 주지 우산당 상진(牛山堂 相珍) 스님이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 그 뒤 1936년 무렵에야 지금처럼 ‘임정사’라는 이름으로 등록하였다. 경내 건물은 1970년대 초에 극락전을 지었고, 1986년 무렵에는 삼성각과 종각을 건립하였다. 1990년부터는 견성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요사와 담장을 쌓는 등 사찰을 중수하여 오늘날과 같은 불사를 일구었다. 현재 주지는 법일(法一) 스님이시다. 삼성각 앞에「봉성산임정사극락보전창건동참비」가 세워져 있는데, 근대 임정사의 연혁을 간단히 기록하고 있어 도움을 준다.

⊙ 성주역사테마공원

- 홈페이지
https://sj.go.kr/tour/page.do?mnu_uid=3349&con_uid=4795&cmd=2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로 3167-11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이다. 성주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정사 앞 동북쪽 성곽의 흔적만 일부 남게 되었는데 2020년 10월에서야 재건하였다. 산책로에 조성된 비석들은 조선 시대에 성주 곳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도로 개설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이전되어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각 시설은 각종 문헌과 관련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해 지역문화유산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했다.

⊙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홈페이지
https://www.sj.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일원)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성(邑城) 서문 밖에 조성된 숲으로, 300~500년 생의 왕버들나무 52그루가 자라고 있다. 『경산지(京山志)』및『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서문 밖의 어린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성밖에 조성된 숲이라는 단순한 이름 뒤에는 성주의 다양한 역사와 생활사가 담긴 가치 높은 공간이다.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單純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조성된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마을 사람들의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 마을의 풍치와 보호를 위한 선조의 전통적 자연관을 보여주는 전통적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 성밖숲은 축제 등 각종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산책 공간, 생활체육 활동 공간 등 다양한 주민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왕버들나무가 4-5월이면 연두빛으로 물들고, 8월이면 야생화 맥문동의 보랏빛으로 장관을 볼 수 있다.

⊙ 성주 예산리 배리댁


- 홈페이지
https://www.sj.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3길 22

이 건물은 1936년에 도문환(都文煥)이 건립한 살림집으로, 결혼한 아들 도재림(都在琳) 내외가 분가하여 살도록 한 집이다. 택호(宅號)는 도재림의 부인이 배리(裵里)마을에서 시집온 데서 연유한다. 가옥의 건립자인 도문환(都文煥, 1887~1970)은 성주 지역의 선각적인 유림으로 계몽운동에 앞장선 만산(晩山) 도갑모(都甲模, 1864~1937)의 아들로서, 1920년대 성주지역의 청년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평기와로 우진각 지붕을 이은 동향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의 안채가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채 전방으로 넓은 빈터가 남아 있는데, 이는 행랑채와 창고가 있었던 부지이며 주변으로 민가가 분포하고 있다. 가옥은 전체적으로 전통 한옥의 외관에 일본식 전통 가옥의 평면구조, 창호, 실내장식 등 2층 구조의 절충식 근대 가옥으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성주 놀벤져스 어린이놀이터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순환로1길 17-13

어린이 공공놀이터인 놀벤져스는 아이들의 모험심과 창의성 개발을 위해 안전성을 고려하여 아동전문기관인 세이브 더칠드런과 함께 성주군이 조성한 어린이 공공놀이터이다.
당초 성주군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로 마련된 이곳은 입소문을 통해 인근도시 어린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등극, 2호점, 3호점의 연이은 개장과 함께 가족단위 방문객들의 새로운 놀이문화 쉼터로 인기몰이 중이다.
스카이워크, 짚라인, 월훌라, 트램펄린, 모래놀이 등 다양한 신체활동이 가능한 시설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5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