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홈페이지
http://www.najusim.or.k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길 26
1929년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발생한 한일 학생 충돌, 10월 31일 나주-광주 간 기차 통학생들 간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흔히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인들은 학생독립운동의 발생과 확대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 개관하였다. 주변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된 구나주역 역사와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등이 있으며, 직선거리 약 500m, 도보 7분 거리에 나주읍성지 유적지가 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61-334-5393
- 쉬는날
매주 월요일/공휴일
※ 삼일절/현충일/광복절 개관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 하절기(3~10월) 09:00~18:00
- 동절기(11~2월) 09:00~17:00
- 이용요금
무료
- 주차시설
가능
◎ 체험프로그램
3D모형제작/에코백/보드게임/교복체험
◎ 주위 관광 정보
⊙ 구 나주역
- 홈페이지
https://www.naju.go.kr/tou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길 20 (구)나주역
구) 나주역사는 광주 학생 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다. 1929년에 발생한 나주역 사건은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한 일본인 남학생들과 한국 남학생들 간의 충돌로 시작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광주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명치절 기념식 후에 있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제에 대한 항쟁을 시작했다. 이 학생들의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194개교의 54,000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확산되었으며 구) 나주역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평가돼 나주역사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구) 나주역사는 초기의 역사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밀랍인형을 사용하여 당시의 역무원들의 개찰 모습과 철도청과 철도공사 시절의 물품들을 건물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관도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당시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
구) 나주역은 나주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13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KTX 나주역과는 5.4km, 차량이동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구) 나주역 뒤로 KTX가 지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 홈페이지
http://www.naju.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 2-20
* 나주읍성의 남쪽을 책임지던 곳,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
나주읍성(羅州邑城)의 남문(南門)으로 나주시 남내동에 복원되어 있다. 1920년 경 일제에 의해 약간의 석축만 남고 완전 철거되었다. 이후 1993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으며 그 후 추녀와 천장이 훼손되어 2005년에 보수하였다. 2층으로 된 문루(門樓)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나주읍성에는 동쪽의 동점문, 서쪽 서성문, 남 남고문, 북의 북망문이 있는데 이중 남고문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 조선시대의 평산성, 나주읍성 *
나주읍성은 대부분의 조선시대 읍성과 마찬가지로 평지와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산성으로 배후에는 금성산성을 이루고 있다. 전체 성벽의 크기를 복원해 보면 둘레가 3.679m 면적은 974.390㎡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훼철되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곽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현존하는 유구를 살펴보면, 먼저 서벽(西壁)의 경우는 교동일대에 남아 있는데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중 교동 67번지 부근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돌 크기는 길이 19m, 높이 90~240cm로 성벽의 아랫부분을 1X1m 크기의 자연석을 겉면만 치석하여 ‘잔돌 끼움 방식’방식에 의해 쌓아 올렸다. 서문지에서 북벽까지는 잔존유구가 인되지 않는다. 북벽(北壁)의 잔존유구는 산정동 1-5번지 부근에 길이 15m의 석축열 일단과 성북동 33번지 앞에서 나주 중앙초등학교 뒤편까지 약 50m에 걸쳐 성돌이 흩어져 있다. 동벽은 중앙동 천변(128-12번지) 부근에 석축의 일부가 확인된다. 남벽의 경우 현재로는 남아 있는 유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며 다만 남문지(남외동 2-20번지)는 사적지로 지정되어 남문(南顧門)을 1993년 성벽을 제외하고 복원하였으며, 동점문은 2005년에 복원하였다.
※ 나주읍성 사대문 명칭 - 동)동점문, 서)서성문, 남)남고문, 북)북망문
⊙ 나빌레라 문화센터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나주천1길 93 (금성동)
일제 폐산업시설이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로 재탄생했다. 나빌레라 문화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폐 산업시설 문화재생 공모사 업어 선정되어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2017년도 10월에 개관했다. 기존 건물 6동에 전시실 및 소극장 등 문화예술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조성했다. 또한, 목수김씨전, 대한민국 천연염색문화상품대전 수상작 전시 등 다양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나주 구도심과 혁신도시를 이어 스마트 생태도시를 구현해 줄 나빌레라 문화센터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 정수루
- 홈페이지
http://www.naju.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금계동 13-18
정수루는 나주에서 편찬된 여러 지지류에 ‘관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나주의 관아문이다. 정완루라고도 불리었다.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1753년 5월 29일~1755년 2월 4일 재임)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수루로 적혀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조나 양식 등으로 보아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로 여겨진다. 이곳을 지나면 나주목 관아인 동헌으로 들어가며 외동헌과 내동헌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는 내동헌인 목사 내아만 남아 있다.
정수루 주변으로는 목사를 보좌하던 향리들의 집무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나주목의 궁실인 나주 객사 금성관과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 등의 건물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아래로 사람과 차량이 왕래하였으나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지금은 우회시키고 있다.
바로 인접하여 금성관이 있다. '사매기째깐한박물관'이 직선 거리로 150m에 위치해 있다.
⊙ 나주 금성관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https://www.naju.go.kr/tou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8
이 건물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초창은 성종 6~10년(1475~1479) 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 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 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 나주 목사내아
- 홈페이지
http://www.naju.go.kr/moksanaea/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3-10 (금계동)
나주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사의 관저로서 상류주택의 안채와 같은 평면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는 순조 25년(1825년) 건립된 것으로 건물 구조는 전통 양식인 한옥 ㄷ자형이다. 나주목사내아는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나주는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문화유적 답사지로서 적합하다.
* 규모 - 내아 1동, 행랑채 1동
⊙ 사매기 째깐한 박물관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2 영화광고나눔터
째깐한은 전라도 사투리로 조그만, 작은 이라는 의미이다. 사매기 재깐한 박물관은 오랜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나주 유일의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 박물관으로 옛 추억과 선조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옛날 나주 사매기 사람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수집되어 박물관을 이루고 있고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근대 한국을 살아간 서민들의 생활용품도 전시되어 있다. 정리가 안되어 쌓아 놓듯 전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질서가 오히려 박물관과 잘 어울린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어떻게 어려운 세월을 살아갔는지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의 외관은 황토 벽에 초가지붕이지만 정겹게 느껴진다. 이곳의 박물관장은 째깐한 박물관 앞의 나주 곰탕집 대표이다.
인근 문화재로 길 건너에 금성관이 있고 사매기의 어원이 된 사마비가 서있으며, 도보 2분 거리에 금성관과 인접하여 정수루 문화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서성문
- 홈페이지
https://www.naju.go.kr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서성문길 30 (서내동)
나주읍성의 서쪽에 위치한 서성문은 관군과 동학군의 전투역사를 가진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성문이다. 1894년 7월 1일 나주를 점령하기 위해 동학군이 서성문으로 내달렸으나 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당시 나주 목사 민종렬과 협의를 위해 나주읍성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그 문이 서성문이다.
1815년에 발간된 [나주목여지승람] 서문에 [영금운으로 기록된 편액이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 [영금문] 현판을 제작하여 걸었다. 영금문은 두루 나주를 비춘다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예상된다.
나주 천년의 역사를 담은 나주 문화재 야행 축제는 나주 원도심 문화재를 야간에도 개방해 관광객들에게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색다른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초여름 밤 원도심 읍성권 일원(금성관~서성문)을 따라 걸으며 옛 조상들의 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을에는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를 개최하여 서성문에서는 조립아트작품인 [앵무새 케이지]는 앵무새가 같은 말을 반복하듯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해온 희생을 표현하고, 작품 [사람들]은 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시대적 희생양이 된 사람들을 떠올리게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
⊙ 나주 순교성지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박정길 7-40
나주 순교성지는 기해박해(1839) 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1807~1839베드로)와 병인박해(1866~1871)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바오로,1822~1872),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문보(바오로, 1822~1871)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교자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경당 입구에는 60톤의 거석과 관 모양의 제대가 있고 경당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위쪽만 뚫려 있다. 성당 내에는 초대 나주 본당 신부인 하롤드(헨리, 1909~1976) 대주교가 초대 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되어 당시 수녀들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에 그들이 순교한 장소인 무학당 순교터 (현 나주초등학교 정원 내)가 있고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여 개의 돌이 130여 년 동안 현장에 보전되어 오다가 2001년 나주 성당으로 옮겨 그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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