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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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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원


- 홈페이지
http://www.cjmh.or.kr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단재로 361

청주문화원은 1957년에 창립, 출범한 이후 60년 넘게 지역문화 중심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그 열매를 수확하여 갈무리해 온 유서 깊은 향토문화의 발원지이다. 이곳에서는 문화학교의 일환으로 민요, 다도, 한국무용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원 윤리 대상 시상을 통해 건전한 문화를 권장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도의 교실, 청소년 체험 프로그램 운영, 성년의 날 행사 등 차세대 청소년 선도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여 주민 간의 결속을 다지고 있으며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 소개 정보
- 규모
580평

- 문의및안내
043-265-3624~5

- 쉬는날
매주 토요일 / 일요일 / 공휴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 강좌에 따라 변동, 홈페이지 참고

- 이용요금
※ 강좌에 따라 변동, 홈페이지 참고

- 주차시설
가능

- 주차요금
무료





◎ 체험프로그램
청소년 문화 학교 /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 역사 프로그램 등



◎ 사업내용
문화유적지 순례 / 향토사료 수집 보존 / 지역사회 교육 / 지역문화개발 / 홍보전시 활용 / 문화학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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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청주 무농정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단재로 273 (용암동)

청주 무농정지(충청북도 기념물)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씨족으로 널리 알려진 청주 한 씨의 유허지이다. 이곳은 청주 남쪽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며, 낮은 구릉 위에 정자를 짓고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왔다. 정자의 옛 터는 폐허화되고 숙종 14년(1688년)에 후손 한익저가 세운 유허비만 남아있었는데, 1949년에 후손들이 정자의 옛 터에 시멘트로 중건하였다가 1988년 목조로 개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서 내부는 우물마루에 난간을 돌렸다. 서쪽에 작은 일각 대문이 있고 4면을 담장으로 둘렀으며 앞뜰 좌측에 무농정 유허비가 있다. 무농정 유허비는 높이 93.5cm, 아래 너비 37cm, 윗너비 41.5cm, 두께 185cm의 둥근 머리 모양이며, 대략의 연혁이 쓰여 있다.
* 무농정지의 유래 *
부농 정지에 있는 유적비에 따르면 청주 한 씨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농사를 짓던 장소에 정자를 지어 ‘아무 농정(務農亭)’이라 하고 농사를 권장하였다. 그 후 정자가 허물어져 없어진 자리에 후손 한익 저가 1688년(숙종 14)에 유적비를 세웠다 하여 부농 정지가 되었다.

⊙ 망골조각공원(망골공원)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평로 168 (용암동)

망골조각공원은 청주시 용암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망골공원이라는 명칭은 현재는 택지개발로 사라졌지만, 개발 이전에 자리해 있던 망골 골짜기에서 따왔다. 망골공원은 여러 입구로 진입이 가능하나 대표적인 출입구 두 곳에 용 조각이 설치돼 있다. 공원이 위치한 용암동의 명칭 자체가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바위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공원 내부에는 어린이 놀이 시설, 야외무대, 족구장 등이 갖춰져 있다.

⊙ 운곡서원


- 홈페이지
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214번길 37-3 (운동동)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운곡서원은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으며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전라북도 남원의 어은사에서 모시던 월성군 이청과 광주의 두암 서원에 배향된 이감, 이흘, 이필경 등 경주 이 씨 인물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1944년에 경주 이 씨 국당공파 문중과 청주의 유림들이 세운 사우이다. 1976년에 이종문을 추가로 배향하여 함께 제향하고 있다.
서원은 산록 하단부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삼문과 사당을 축대로 쌓아 축조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풍판을 달았다. 장대석 기단 위에 평면을 내진과 외진으로 구분하였으며 내진에 3개의 분합문을 달았다. 단청은 검소한 느낌을 주는 긋기단청으로 하였다. 사당 입구에는 삼문을 세웠고, 삼문 밖에는 재실이 있다.

⊙ 구계서원


- 홈페이지
http://www.cheongju.go.kr
http://www.cha.go.kr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안뜸로47번길 28

청주 구계서원은 조선 후기 선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47년 지방 유림이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이준경,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헐어서 치워졌다. 광복 후 1955년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1982년에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쳤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으로 된 사우(祠宇), 5칸의 재실(齋室), 신문(神門), 동·서 협문(挾門), 기념비 등이 있다. 사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이준경의 위패를 중심으로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춘추 제향 시 제관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 공군박물관


- 홈페이지
http://www.afa.ac.kr:8081/user/indexMain.action?handle=1&siteId=museum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단재로 635

공군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항공 군사 박물관으로 공군사관학교 내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군 및 공군사관학교의 발전사에 관계되는 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주요 군사 문화재를 전시함으로써 사관도 및 장병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고 국민들에게 공군의 활약상을 널리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내 전시실의 규모가 3,123.9m², 야외 항공기 전시장의 규모가 16,529m² 정도 된다.
공군 박물관의 전신은 1979년 서울 대방동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을 당시 문을 연 공군 기념관이었으나 1985년 12월 지금의 공사 캠퍼스로 이동하면서 명칭도 공군 박물관으로 변경됐다. 소장품은 4천3백여 점이며 이 가운데 1천2백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1층은 공군의 태동기부터 현대기까지 역사를 볼 수 있으며 이희우 박사가 세계에서 수집하고 기증한 200여 점의 종이비행기 전시관과 영화관이 있다. 2층은 공군사관학교의 역사와 사관생도의 생활을 볼 수 있고 항공작전을 통제하고 영공을 24시간 감시하는 레이더 감시체제를 전시하는 방공관제를 시청각 자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야외 전시장은 공군이 최초로 보유한 L-4, L-5 항공기를 비롯한 총 30대 전시되어 있어 공군에 대해 알고 싶고 공군이 되고자 하는 청소년에게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 청주 탑동 양관


- 홈페이지
http://www.cheongju.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로32번길 17-6 (탑동)

탑동 양관은 20세기 초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로 선교사 주택 4동, 성경학교 1동, 병원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주에 서양식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선교사 밀러가 청주에 온 이후부터이다. 이때부터 땅을 사기 시작해서 각각 다른 시기에 6동의 건물을 지었다.
지하실은 주로 돌을 사용해 외벽을 쌓았으며, 6동의 건물 중 한 건물의 주춧돌은 개신교 선교자들이 있던 청주감옥의 벽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양관 부지 내에서 기와와 벽돌을 굽기 위한 질 좋은 점토가 발견됐고, 이를 채취해 벽돌을 굽는 데에 50명 이상의 인원을 고용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못했던 유리, 스팀보일러, 벽난로, 수세식 변기, 철물류와 같은 수입자재가 많이 사용된 건물이다.
한식과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지어진 연대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적 특징을 나타내며, 전통건축에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과도기적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1호는 사유지라 안을 볼 수 없고, 2호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로 사용 중이며, 3~6호는 학교 안에 있어 수업이 없을 때는 둘러볼 수 있다.

⊙ 김수녕양궁장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1순환로1514번길 89 (용정동)

김수녕양궁장은 청주시 용정산림공원 옆에 위치해 있다. 김수녕 선수는 청주 출신의 양궁선수로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하며 2013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서는 대한민국 선수 중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신궁이다. 30여 차례의 세계 신기록 경신 등 양궁사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남기고 1993년에 은퇴했다. 청주시는 1994년 김수녕 선수의 이름을 따 김수녕양궁장을 개관했다.
이곳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잔디구장과 달리기 등 운동하기 좋은 트랙, 그 사이에 그늘막을 설치해 운동 중간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한쪽으로는 시민들을 위한 야외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다. 간단한 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는 매점도 운영하고 있다.
대회나 행사 대관이 있을 경우 이용에 제약이 있으나 평상시엔 편하게 찾아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운동할 수 있다. 단, 킥보드,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보드, RC카, 드론 등은 반입 금지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 청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 홈페이지
https://www.cheongju.go.kr/ktour/index.do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5

청주 중앙공원은 청주시 한가운데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그 공간 안에 병마절도사 영문이 있다. 병마절도사란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두어 병마를 지휘하던 종 2품의 무관 벼슬이다. 병마절도사 영문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營)의 출입문이다. 영문 앞에는 수령 1천 년가량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은 당초 충남 해미현에 있었다가 효종 2년(1651)에 이곳으로 옮겼다. 병마절도사는 충청도 관찰사가 겸직하고 따로 전임의 종 2품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곳에 전임의 절도사가 있고 충청도의 육군인 기병/보병을 총괄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조선시대 후기 병영이나 수영의 출입문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네모진 높은 주춧돌 위에 세운 2층의 누문으로 아래층의 중앙에 문을 달아 출입하고 위층은 우물마루로 하고 계자난간을 돌렸다. 이 건물은 1988년까지 청녕각으로 오인되어 서원현감 이병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 병마절도사의 형태 *
병마절도사의 건물은 195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공포형식은 이익공이며, 가구는 5량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방형 고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누하부에 문비시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누하부 중간에 외부 원기둥과 달리 네모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주초석도 낮게 구성한 상태로 보아 본래 이 부위에 대문을 달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남측 내부에 루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대는 우물마루로 되어있으며, 사면에는 계자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쪽면의 양측 귀기둥에는 “節制州郡兵營”, “鎭南千丈銅柱”라고 새긴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홈페이지
https://www.cheongju.go.kr/ktour/index.do
https://www.heritage.go.kr/main

-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48-19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에 있는 당간은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됐으며 이때 당간도 함께 세웠다. 당간이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용두사지 철당간은 보물인 공주 갑사의 철당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안성 칠장사 당간과 함께 우리나라에 딱 3개 남은 철당간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로 인해 백성들의 피해가 잦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웠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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