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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 동래구] 동래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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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문화원


- 홈페이지
http://dongnae.kccf.or.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로 80 (명륜동)

동래문화원은 동래 지역의 높은 문화 수준을 위해 향토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 및 계승하고, 각종 문화행사 개최를 통해 구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문화를 진흥하기 위해 설립했다. 1998년 사단 법인으로 개원했으며 1999년 동래문화회관으로 이전했다.
지역 문화 행사 주관, 문화 예술 교양 사업, 국고 보조금 지원 사업 등 크게 3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예술·문화 강좌와 함께 전통과 충절의 고장답게 역사 축제, 제향, 향토 사료 조사 연구 등과 같은 차별화된 사업을 펼치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동래 지역의 역사적 사건의 재현은 부산동래문화원만의 특징이자 부산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1-555-1441

- 쉬는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강좌에 따라 다름

- 주차시설
가능 (소형 약 10대)





◎ 체험프로그램
동래학춤 / 한국무용 / 풍물 / 가야금 강좌 등



◎ 사업내용
동래 3.1독립만세운동, 동래읍성역사축제, 임진동래의총제향, 향토사료조사연구, 문화학교 운영, 공연 및 전시, 문화유적탐방, 향토문화예술지발간, 국비공모사업, 자매결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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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동래문화회관


- 홈페이지
https://www.dongnae.go.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로 80 동래문화회관

동래문화회관은 부산 유일의 숲속에 있는 공연장으로, 1999년 10월 개관했다. 대극장(505석), 소극장(196석), 야외공연장(1,130석),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수준 높은 문화 예술 공연장이자 시민을 위한 열린 휴식 공간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공연장 주변에는 동래 사적공원과 동래읍성, 복천박물관, 장영실 과학동산, 동래 사적공원 등이 있다. 동래 사적공원의 숲속,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맨발걷기체험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 복천박물관(부산)


- 홈페이지
https://museum.busan.go.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 (복천동)

복천박물관은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부산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고 전문박물관이다. 1996년 10월 5일에 개관했다.
복천동고분군에서 7차에 걸친 발굴 조사로 밝혀진 덧널무덤(목곽묘),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앞트기식돌방무덤(황구식석실묘), 독널무덤(옹관묘)등 총 2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여기서 다양한 형태의 가야토기, 철제무기류, 갑옷, 투구, 가지방울, 금동관, 목걸이 등 12,000여 점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박물관에는 출토된 유물을 종합전시하고 있다. 사적 제273호로 지정된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다양한 무덤 양식들은 아직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있는 가야의 신비를 푸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복천박물관은 개관 이후 인근지역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며, 부산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해 나가고 있으며, 지속해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학술 세미나 및 특별전을 통해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역사교육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 부산 복천동 고분군


- 홈페이지
https://museum.busan.go.kr/bokcheon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

부산 복천동 일대의 구릉 위에 있는 가야 때 무덤들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4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아직도 땅 밑에 남아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토광목곽묘), 땅 속에 네모난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땅 속에 시체를 바로 묻는 널무덤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식의 무덤들이 있다. 구릉의 원래 이름을 따서 학소대(鶴巢臺) 고분군이라고도 한다. 1969∼1972년 동아대학에 의해 10여 기가 최초로 발굴된 이래, 부산대학이 1974년 구릉 동쪽 사면에 있는 3기의 고분을 발굴하였다.

이후 1980∼1994년 부산대학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6차에 걸쳐 100여 기가 넘는 고분군이 발굴조사되었다. 이 무덤들에는 도굴되지 않은 큰 무덤이 많아 2,000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굽다리접시(고배), 목항아리(장경호), 토제등잔을 비롯한 토기류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적인 토기들이다. 철제 갑옷·투구류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4호 무덤에서 나온 단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갑옷이다. 11호에서 출토된 괘갑은 부속 장식까지 완전하게 갖춘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런 완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는 것이다. 10호 무덤에서 발견된 말갖춤(마구)은 완전히 갖추어진 실전용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이러한 갑옷·투구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다. 복천동 무덤에서는 새로운 무덤양식을 발견하여 무덤의 변천과 흐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의의 *
울산 하대고분군,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도항리고분군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가 보인다. 처음에는 시신이 매장된 으뜸덧널[主槨]과 유물이 매장된 딸린덧널[副槨] 모두가 덧널인 양식이 이용되다가, 으뜸덧널이 구덩식돌덧널이고 딸린덧널이 덧널인 것으로 변해가고, 마지막에는 딸린덧널이 폐지된 단독 구덩식돌덧널로 되었다가 곧 앞트기식돌방으로 교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굴된 상당량의 토기는 신라 ·가야 토기 편년의 기준이 된다. 또한, 특징적으로 갑옷 ·투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갑옷 ·투구 이외에도 말갑옷[馬甲], 말머리가리개[馬胄] 등 철로 만든 무기가 상당수 출토되어서 당시 말을 이용하여 전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매장시설의 바닥에는 덩이쇠[鐵鋌]가 1∼3열씩 깔리기도 한다. 《삼국지》 동이전 변한조에 철을 화폐 대신으로 쓴다는 기록이 있는데, 덩이쇠가 다른 철제용품을 만드는 재료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화폐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다.

⊙ 동래향교


- 홈페이지
https://www.dongnae.go.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조선은 1392년(태조 1) 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임진왜란 이후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이 재건한 이후 1704년(숙종 30)에 동래부 동쪽 관노산 아래로 옮겨졌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래부가 되었을 때 동래향교에는 종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 7결도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래향교의 건물구조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반화루, 동재, 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과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 서무와 내·외삼문, 사주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자 이하 중국의 저명한 유현 7분과 우리나라의 유현 18분을 모시고 있는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유림들에 의해 석전대제가 봉행되고 있다.

⊙ 동래읍성지


- 홈페이지
https://www.visitbusan.net/kr/index.do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칠산동)

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고려말~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공을 위시한 모든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군에 맞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임진왜란 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을 쌓았는데, 이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다.

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 하였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설치하였는데, 앞쪽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쪽의 주조문(朱鳥門)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서문·암문·북문에는 성문의 보호를 위해 옹성(甕城,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성)을 부설하였고, 장대(將臺, 성 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로서 성 밖의 적을 살피거나 전투를 지휘하는 곳), 망루(望樓) 및 15개소의 보루(堡樓)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겨우 남아 있다.

2000년 이후 동래읍성 내 각종 개발행위에 따른 발굴조사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성곽 흔적(조선전기 읍성)과 임진왜란 이후 쌓은 평지 지역의 성곽 흔적, 그리고 조선말기에 수축한 성곽을 확인함 으로써 동래읍성 전체의 정확한 범위, 규모 등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현존하는 성지(城址)를 중심으로 훼손·방치되었거나 남아 있는 성터가 확인되는 곳에 대해서는 발굴조사와 함께 지속적인 보수·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 부산 문화관광>

⊙ 법륜사(부산)


- 홈페이지
https://www.visitbusan.net/index.do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62 (칠산동)

법륜사는 동래구 칠산동 학소대에 자리한 사찰이다. 이곳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거칠산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곳으로, 1980년 금동관·무기 등이 출토된 바 있는 복천동 고분군과 학이 집단으로 둥지를 틀고 살았던 학소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래 중심지에 우뚝 솟은 학소대의 모습은 그 옛날부터 학이 깃들만한 명소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이다.
법륜사는 1898년 범어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되어, 야학운동을 통한 문맹퇴치와 3.1 운동의 본거지로 민중교화와 민족정신을 배양하던 곳이다. 범어사가 1800년대 말 부산지역 포교를 위해 개설한 포교당은 모두 5개이며, 이 중 4개 포교당은 모두 없어지고 동래 포교당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근대 영남지역 불심을 이끌어 온 본거지라 할 만큼 대중 포교의 중심에 있어 온 사찰이다. 법륜사는 도심 속에 있으나 풍광이 아름다우며 인근에 동래 복천동 고분군 등 관광지가 많다.

⊙ 동래온천 노천족탕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공원로26번길 21 (온천동)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의 하나로 동래온천지구에 있으며 용머리 조형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40℃ 이상의 온천수로 족욕을 할 수 있는 건강온천이다. 동래온천은 를 비롯해 여러 고서에 등장하는데, 에서는 온천수의 열이 계란을 익힐만하다 했고, 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에 온천이 있는데 그중에서 동래온천이 으뜸이라 하여 병자들이 목욕을 하면 문득 나아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족탕은 인체 12경락의 중요한 혈들이 밀집한 발과 발목 주변의 근육 및 관절을 뜨거운 물로 자극해 전신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발의 피로감, 고혈압, 저혈압, 권태감, 생리불순, 요통, 관절염 등의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래온천지구의 수온은 63℃ 정도이며,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온천수를 마시면 만성 위장병 및 위장근약증에 효력이 있다고 한다.
족욕탕 주변에는 허심청, 녹천탕, 천일탕 등 동래온천지구의 대형 목욕업소가 위치해 있으며, 온천 상징물인 온정개건비가 인접해 있다.

⊙ 온정개건비


- 홈페이지
https://www.dongnae.go.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로124번길 23-17 (온천동)

온정개건비는 온정(온천)을 대대적으로 고쳐 쌓은 동래부사 강필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766년(영조 42)에 세운 비석으로 비문은 송광적이 썼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는 높이 144cm, 폭 61cm이며, 머릿돌을 따로 두지 않고 몸돌과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고 비석 앞에 돌로 만든 욕조가 남아있다.
동래온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며 신라의 재상 충원공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온천의 물이 계란을 익힐 만큼 뜨거웠으며, 병자가 목욕을 하면 잘 나아 신라의 왕이 여러 번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비문에 따르면 1691년(숙종 17) 돌로 두 개 탕을 만들었고, 이후 건물이 낡아 탕이 막힌 것을 동래부사 강필리가 다시 고쳐 짓고, 남탕과 여탕을 구분한 9칸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상쾌하고 화려하여 마치 꿩이 나는 것과 같다고 적혀 있다.
현재 비석이 있는 자리는 1960년대까지 부산시에서 온천수를 뽑아 올리던 곳으로, 용왕신을 모시, 매년 음력 9월9일 제사를 지내는 용각이 함께 남아있다.

⊙ 부산광역시립 서동도서관


- 홈페이지
https://home.pen.go.kr/seodonglib/main.do

-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부로76번길 5 (서동)

부산광역시립 서동도서관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저마다의 바람과 꿈을 찾아 모이는 공간이자 지역주민의 평생교육기관이다. 1983년 5월 부산직할시립 서동도서관으로 개관하고, 1995년 1월 부산광역시립 서동도서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3년에 개관한 이래 20여 년의 시간 동안 지역주민과 함께 성장 발전하고 있다. 보유 자료는 도서 137,704권, DVD 4,451개, CD 676개, 오디오북 259개, 연속간행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서동도서관은 자료의 수집, 열람, 대출에서부터, 시기별 다양한 문화강좌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여가활동과 학습 기회를 도모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지식정보센터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평생교육센터 기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평생학습체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지식 기반 사회로 나아가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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