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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라북도 정읍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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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념관


- 홈페이지
http://www.1894.or.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1894년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크게 승리한 성지인 정읍에 이를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전적류를 전시·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은 전시관과 교육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2개 층의 전시관 1층에는 안내데스크, 세미나실, 기획전시실, 어린이전시실, 녹두학당, 수장고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상설전시실과 휴게실, 영상관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에 맞추어 전시실이 구분되어 있어 전개 과정을 과정 하나하나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자 마련된 어린이 전시실은 어른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가족 단위로도 방문하기 좋다.
교육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공간으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각종 교육 및 행사를 3개의 강의실이 있다.
주변 관광지는 백산성, 이매창묘, 부안향교, 매찬공원, 수청저수지가 있다.

 


※ 소개 정보
- 규모
부지 335,000㎡, 연건평 6,180㎡

- 문의및안내
063-530-9451

- 수용인원
최대 100명

- 쉬는날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10:00~18:00

- 이용요금
무료

- 주차시설
있음(일반 266대, 장애인 12대, 버스 23대)

- 주차요금
무료





◎ 체험프로그램
- 1894, 녹두꽃의 기억
- 1894!, 가보세 갑오세
- 창수야, 놀자!
- 동학농민 발자취를 찾아라
- 1894 시간여행



◎ 예약안내
* 신청방법
- 예약은 관람희망일 1개월 전부터 5일 전까지 가능
- 예약승인은 예약인원 범위 내에서 신청 우선순위로 허가
* 신청대상
- 전시설명을 희망하는 내국인 관람객
* 기타 자세한 사항은 전화(063-530-9454)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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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정읍 황토현 전적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로 덮인 작은 산으로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이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 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 증산 강일순 탄생지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송길 64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탄생지는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에 위치한다. 탄생지는 조선 말기의 종교가이자 증산교 각 교단이나 교파의 교조인 강증산(姜甑山)의 생가를 말한다. 시루봉 아랫마을인 신송마을을 일명 손바래기(객망리)라고 하는데, 현재 생가로 알려진 집 바로 위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현 탄생지에 강증산의 양자를 자처한 강경형(姜炅馨)이 살면서 ‘강증산상제하강지(姜甑山上帝下降地)’라 써놓았고, 방에는 강증산의 영정(影幀)과 태을주를 걸어놓았다. 강경형이 타계하고, 강증산의 영정을 안치한 집은 강씨 문중의 원래 소유주의 후손이 차지하고 있다.
강증산은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통해서 혼란과 갈등의 선천시대를 마감하고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계획함으로써, 앞으로는 갈등과 전쟁 같은 혼란이 사라지고 상생(相生)과 대동(大同)의 세상이 열릴 것이라 하였다. 더불어 선경(仙境)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송수련을 통해 신화(神化)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강증산은 말세의 극복을 위한 해원(解冤)과 개벽을 위한 상생을 강조하는 등 인존과 평화를 주창하였다.

(출처 : 정읍시 문화관광)

⊙ 도계서원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culture/index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 (덕천면)

이희맹·김제민·최안·김지수를 비롯하여 김제안·김흔·김섬·김습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종 23년(1492)에 장원 급제하여 등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 서원은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그 뒤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더하여 모셨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2년에 고쳐 지었는데, 이때 김섬과 김습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현재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우, 강당인 서당,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서는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 천곡사지 칠층석탑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망제동)

속칭 전곡사지라고 일컫는 망제동의 서쪽 산기슭에 위치한 탑으로 낮은 단층기단 위에 7층탑신을 올린 방형 평면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8매의 석재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1매의 판석형 석재로 조성한 낮은 단층기단을 놓았다. 기단은 거칠게 다듬었으며, 측면에는 아무런 조식도 없다. 측면 상단에는 갑석형의 굽을 돌렸는데, 상면은 약간 경사지게 다듬은 후 중앙에 낮은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기단구조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운주사석탑군에서 볼 수 있어 고려시대에 시작된 기단의 한 유형임을 알 수 있다.

⊙ 동죽서원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culture/index.jeongeup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덕천면)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 상세 보기 : 바로가기

⊙ 창동서원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culture/index.jeongeup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 (이평면)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창동서원은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서원으로, 1965년 이곳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 김택술(1884∼1954)을 배향했다.
김택술의 본관은 부안, 자는 종현, 호는 후창이다. 17세 때 천안 금곡에 있는 전우를 찾아가 수학하여 후창이란 호를 받았다. 1906년 최익현의 태인 의병에 참여했으며, 송병선, 김복한과도 사귀었다. 1909년 부모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찢어 환자에게 피를 먹였고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여 효로서 이름을 알렸다. 또한, 왜적 타도의 기회를 엿본다는 뜻으로 불망실을 짓고 후진을 교육하며 철저한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항거했고 1954년 세상을 뜬 후, 1975년 사론으로 계양사에 추배되었다.
창동서원의 건물은 사우, 강당, 고직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후창집]을 비롯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 망제동석불입상(대암석불)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보화리

전라북도 정읍시 두승산의 지맥인 만제봉 중턱에 있는 석불로 대암석불이라고도 한다. 머리에는 마치 갓과 같은 테가 큰 모자를 쓰고 있어 유교적인 성격이 가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모습이며, 턱 밑에는 U자형의 옷 주름이 있다. 배 아래에서는 옷 주름이 V자형으로 처리되었고, 손목 아래에는 3줄의 평행선이 내려지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은 위를 향하고 있다. 왼손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얼굴 표현과 손 표현에 노력이 집중된 불상으로 민속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높이 4m이고 어깨 둘레 2,7m나 되는 큰 부처로 한 덩이 돌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창동서원, 백운암 석불입상, 말목정과 감나무, 전봉준 선생 고택, 말목장터 유지비가 있어 연계 관광할 수 있다.

⊙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culture/index.jeongeup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43 (영원면)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은 정읍시 은선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탑은 백제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고려시대에 만든 석탑으로 높이는 6m이다. 기단(基壇)은 낮은 1단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과 같은 양식이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여러 장의 돌로 이루어졌다. 1층의 몸돌은 대단히 높아 기형적인 인상을 주고, 각 면 모서리에는 희미하게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다. 2층 몸돌은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었으며, 남쪽면에 2매의 문짝이 달려 있는데, 이는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은 벽면에 본떠 새기기만 하는데 이렇듯 양측에 문짝을 단 유래는 매우 희귀하다. 3층 몸돌은 더욱 줄어들고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한 돌을 얹어 간결하게 구성하였다. 꼭대기에는 또 하나의 평평한 돌이 놓여 있으나 이것이 탑의 머리장식의 일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말목장터와 감나무


- 홈페이지
https://tour.jb.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말목장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제1차 백산기포를 할 때까지 장두청을 두고 진을 설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180년 정도 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전봉준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전한다.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이 감나무의 감은 따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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